알렉시 야글라(1920–1942)는 폴란드 비에니에츠에서 태어났으며, 나치 정권 하에서 잘츠부르크 주 잘펠덴의 마르존에 있는 한 농장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1942년 1월 8일, 21세의 나이로 그는 잘펠덴 인근 외딴 숲속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게슈타포는 그가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독일인” 하녀 요한나 블라이크너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이 살해를 정당화했는데,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는 이를 “인종적 오염”으로 규탄했다. 다른 폴란드 강제 노동자들은 경고의 의미로 이 처형 장면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다. 이후 공식 기록은 그의 죽음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위장했다.
토마스 리더(1911–1943)는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잘펠덴에서 태어나 열 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자랐다.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농장 일꾼, 낙농장 노동자, 채석장 노동자, 일반 노동자, 고산 목동으로 일했다. 1940년 잠시 군에 징집되었다가 무릎 부상으로 제대했으나, 이후 거주지 변경 사실을 군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는 가명을 사용해 외딴 고산 목초지에서 살았으며, 절도와 등록 회피 혐의로 반복적으로 체포되었다. 나치 법원은 그를 “위험한 상습범”, “반사회적 인물”, 그리고 병역 기피자로 규정했다. 1943년 6월 23일, 잘츠부르크 지방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면 청원은 기각되었고, 그는 1943년 7월 30일 뮌헨-슈타델하임에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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