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만들(Samuel Mandl)의 가족은 헝가리 서부와 오스트리아 남부 출신이었다. 1889년 마테르스도르프(Mattersdorf)에서 태어난 사무엘은 1919년 비너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로 이주하여, 가족이 거주하던 도이치가세(Deutschgasse) 8번지에서 성공적인 와인 사업을 일구었다. 1922년에는 아내 마리와 딸들인 헤드비그, 로자, 그레테, 게르트루데를 데려왔으며, 이후 에르빈, 헬마, 에리카가 태어났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이 가족은 유대인 공동체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사무엘 역시 그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38년 안슐루스(독일과의 합병) 이후 그들의 삶은 급격히 변했다. 자녀들은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사업은 국유화되었으며, 사무엘은 투옥되었다. 11월 포그롬 기간 동안 가족은 폭행을 당하고 쫓겨나 재산을 몰수당했다. 돈 한 푼 없이 그들은 오스트리아를 떠나려 했다.
유대인 단체들의 도움으로 자녀 중 일부는 탈출에 성공했다. 아들 에르빈, 그레테, 게르트루드와 아버지 사무엘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수 있었고, 헬마는 덴마크로 갔다. 마리는 처음에는 모든 자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뒤에 남았다. 결국 1939년, 그녀는 로자와 에리카와 함께 이른바 '클라도보 수송대'를 통해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여정은 실패로 돌아갔고, 난민들은 세르비아에서 가혹한 환경을 견뎌야 했다. 에리카를 포함해 극소수만이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마리와 로자는 그곳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1941년 유고슬라비아 점령 이후, 남아 있던 난민들은 샤바츠 수용소로 이송되어 강제 노동을 강요받았다. 1941년 10월 초 파르티잔의 공격 이후, 대부분의 난민들은 샤바츠 수용소나 자사비차 강제 수용소에서 처형당했다. 마리와 로자 만들도 희생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들의 장녀 헤드비그 역시 홀로코스트 기간에 살해당했다. 그녀는 결혼 후 헝가리로 이주해(그곳에서 슈타이너라는 성을 사용했다) 임신 중이었으나, 추방되어 두 자녀와 함께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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