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플러 가족은 무터슈타트의 노이슈타터 슈트라세 15번지에 살았으며, 이시도르 에플러는 그곳에서 성공적인 소 사육 사업을 운영했다. 그의 아들 야콥 역시 소 상인이었으며, 파울라 지겔과 결혼했다. 그들의 아들 하인츠와 쿠르트는 무터슈타트에서 자랐다. 1933년 이후 가족은 점점 더 고립감을 느꼈고, 하인츠는 나중에 나치의 횃불 행진과 자신들의 집이 유대인 가옥으로 표시되었던 일을 회상했다. 1938년 8월, 야콥과 파울라, 그리고 아이들은 미국에 있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클리블랜드로 이주했다. 이지도르는 그곳에 남았으며, 나중에 첫 번째 아내의 여동생인 베르타 노이와 결혼했다. 1940년 10월 22일, 이지도르와 베르타는 구르스로 강제 이송되었다. 이지도르는 1941년 1월 그곳에서 사망했고, 베르타는 마르세유의 이민 수용소에 도착했으나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1944년에 사망했다. 하인츠는 나중에 무터슈타트를 여러 번 방문했으며, 기억과 화해를 위한 중요한 목소리가 되었다.
1896년 무터슈타트에서 태어난 야콥 에플러는 아버지 이지도르와 마찬가지로 소 상인이었다. 1925년 그는 에우비히하임 출신의 파울라 지겔과 결혼했고, 1926년과 1927년에 아들 쿠르트와 하인츠가 태어났다. 가족은 두 채의 집과 마굿간, 정원, 헛간이 있는 노이슈타터 슈트라세 15번지의 농장에서 이지도르와 베르타와 함께 살았다. 야콥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으로 싸웠으며, 철십자 훈장을 포함한 자신의 훈장들을 자랑스러워했다. 1933년 이후, 두 아들은 히틀러 유소년단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파울라의 친척들의 도움으로 가족은 미국 비자를 취득했고, 1938년 8월 퀸 메리호를 타고 유럽을 떠나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정착했다. 야콥과 파울라는 새로운 삶을 일구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쿠르트와 하인츠는 나중에 미군에 복무했고, 사업가가 되어 성공적인 섬유 회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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